최병오 회장의 야심작, 여성크로커다일은 연일 승승장구했다. 단일브랜드 최초로 500개 매장, 3000억원 매출 위업을 달성할 정도로 급성장했던 것. 자연스레 최 회장의 고민은 ‘차세대 브랜드를 무엇으로 선정하나’로 이어졌다.
“한창 고민하고 있을 2000년대 중반쯤 ‘아맛나’ ‘스포티지’ ‘프라이드’ 등 추억의 브랜드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하던 때가 있었어요. 이른바 복고문화가 유행한 거죠. 패션에서도 고객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도 뭔가 고급스러운 브랜드가 없을까 해서 알아봤지요. 옛 논노그룹의 대표브랜드 ‘샤트렌’이 있더군요.”
차세대 토종브랜드로 샤트렌 낙점
샤트렌은 한때 단일브랜드로 1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던 브랜드였다. 하지만 최 회장이 알아본 결과 당시 논노그룹이 부도 등으로 주춤하면서 사실상 브랜드 전개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판권은 그 회사 출신의 디자인 디렉터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 회장은 여러 차례 접촉해 결국 브랜드를 확보하게 됐다.
“그간 국외브랜드의 라이선스에서 재미를 본 게 사실이었어요. 하지만 이건 늘 한편에 ‘남 좋은 일 시켜주는 거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만들었어요. 외국브랜드를 한국에 들여와서 소비자들의 패션감각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토종브랜드를 잘 키워 국외 시장을 개척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샤트렌은 그 결과물이죠.”
그래서 최 회장은 샤트렌 론칭 전부터 파격적인 투자를 했다. 브랜드 출시 전에 사업부를 작게 만들어 전개해보고 점차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왔던 이전 수순과 다르게 하고 싶었다는 게 최 회장의 의중이었다. 그래서 형지 외에 주식회사 샤트렌이란 별도 법인을 세우고 빌딩도 따로 매입해 대기업 출신 본부장에게 전권을 주다시피 했다. 국외 트렌드 탐방을 가는 팀원들에게 5성급 호텔에 묵게 하는 등의 배려도 잊지 않았다.
그런 준비 끝에 2006년, 국내 대형 특급호텔 그랜드볼룸에서 500명의 하객을 불러놓고 성대한 론칭쇼를 했다. 톱스타인 이미연 씨를 기용하는 등 여성크로커다일과는 시작부터 차별화를 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시장의 반응이 썰렁했던 것이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돈을 그만큼 들였으니 금방 잘될 줄 알았죠. 그런데 고전하는 거예요. 샤트렌을 떠올리는 고객들은 40대인데 우리가 생산한 옷의 스타일은 20대를 겨냥한 듯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어요. 초기 1년 동안은 시장을 잘못 읽은 값을 톡톡히 치렀어요. 너무 자만했던 거죠.”
실제로 샤트렌은 현재 연매출 1000억원에 육박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기까지 본부장 교체만 4번을 할 정도로 내홍을 겪었다. 여기서 다시 빛난 건 최 회장의 주특기인 ‘위기관리’였다.
“우선 초반 부진 요인을 분석해봤어요. 생산성에서 보니 10명이 할 수 있는 걸 13명이 하고 있었더군요. ‘과감’한 투자와 ‘방만’한 투자 사이에 이렇게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이때 알았어요. 그래서 10명이 할 일을 9명이 하게끔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도록 유도했어요. 이때 중요한 건 오너의 관심과 실질적인 교육이더라고요. 그래서 샤트렌 담당 직원들과는 매일 12시 반에 ‘30분 조회’를 했어요. 현장에서 일어난 일을 공유하고 제 뜻을 직원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꼬박 3개월을 매달렸어요. 그런 과정에서 고객이 실제로 옷을 입어보려는데 파마한 머리 모양을 손상시킬 정도로 꼭 끼게 칼라가 디자인돼 불편하다든지, 사이즈가 나이대별로 다른데 일원화돼 있었다든지 하는 문제점들이 하나하나 잡히더군요. 이를 현장에서 바로바로 개선하니까 점차 고객들이 샤트렌을 주목하더군요. 더불어 대기업 출신 외부 영입인사를 내보내고 내부에서 인재를 등용해 본부장으로 앉혔더니 회사나 제 철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선지 더욱 의사소통이 원활해졌어요. 처음 시작하는 조직일 경우 오히려 내부의 사정을 잘 아는 인재를 기용하는 게 적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최병오 회장은 명함에 좌우명을 항상 새겨 넣는다. ‘평생 남보다 반의반 발자국만 더 간다’는 것이다. 왜 열 발자국도 아니고 한 발자국도 아닌 ‘반의반 발자국’일까. 너무 욕심내서 앞서가려면 주변 동료나 이웃을 보지 못하고 삶이 너무 치열해져 행복한 인생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반의반’만 더 앞서 가는 것이 좋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런 최 회장에게 샤트렌의 초반 부진은 이런 좌우명을 잠시 잊고 너무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것으로 읽힌다. 최 회장 스스로도 ‘당시엔 헝그리 정신이 부족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값비싼 수업료 낸 중국 진출
그러던 최 회장에게서 다시 한 번 얼굴의 미묘한 변화를 읽을 수 있었던 사안이 있었다. 바로 중국 진출이었다. 샤트렌으로 내수 시장을 공략하는 동시에 국외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뛰어든 것이 중국 시장이었다. 하지만 너무 안일하게 접근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중국 시장은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아니라 각 성마다 특성이 다 다른 민감한 시장이었습니다. 중국 진출이 필요하다는 당위성만 갖고 사람을 보냈지 제가 내수 시장 개척할 때만큼 크게 신경을 못 썼더니 결과는 그대로 나타나더군요. 제가 직접 국내에 전개해보지 않았던 국외브랜드를 들여다 중국 시장에 팔려고 했던 것 자체가 무리였어요. 그래서 2005년 진출했다가 3년 만에 과감히 접었지요. 그때 수업료 많이 냈습니다.”
대신 최 회장은 ‘샤트렌’으로 중국 시장에 재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토종브랜드 세계화’가 급선무라고 생각해서다. 상하이에 법인을 설립하고 2008년 12월 진출한 샤트렌은 1년여간 기반을 다진 후, 올 초부터 국내의 디자인 디렉터와 주요 인력을 현지로 파견해 본격적으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식경제부가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브랜드’ 육성사업의 지원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해 더욱 사업에 탄력을 받고 있다.
어덜트(중장년) 시장이야말로 블루오션
최 회장의 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가 주목한 건 점차 성장하는 어덜트(중장년) 시장이다. 2007년 ‘올리비아하슬러’, 2008년 ‘라젤로’를 론칭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의 강의를 4~5년 전에 들은 적이 있어요. 구매력을 갖춘 베이비부머들이 퇴직을 맞게 되고 이들이 새로운 소비층으로 자리 잡을 것이란 전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꽃중년’들의 시대가 올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시장에서는 아직 이른 것 아니냐는 평도 있지만 당장 주변에 50~60대 멋쟁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낙관적으로 봅니다.”
더불어 새로운 고객 개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 남성복 시장에 도전장을 내겠다는 의미에서 과감하게 배용준을 모델로 내세운 프리미엄 남성캐주얼 ‘아날도바시니’를 전개했다. 올해에는 세계 최초 여성전용아웃도어 ‘와일드로즈’를 론칭, 중년은 물론 몸짱 열풍에 관심이 많은 젊은 여성층을 흡수할 계획도 세웠다.
초저가 시장도 최 회장이 눈여겨보는 대목. 올해 출시한 신규브랜드 ‘CMT’는 최 회장의 패션 철학을 잘 알 수 있다. 이름 자체부터 예사롭지 않은데 풀이하면 ‘Choi Made Trend’로 최병오 회장이 자신의 이름을 걸었다고 보면 된다. CMT는 초저가 ‘생활패션’을 표방하며 경쟁력 있는 품질과 디자인의 상품을 접근이 편리한 대형 마트와 거리매장을 중심으로 공급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최 회장은 ‘국외 생산기지를 이용한 과학적 소싱으로 얼마든지 획기적인 원가절감이 가능하다. 따라서 초저가 시장도 얼마든지 수익성이 있다고 본다’는 지론이다.
“2015년 매출 3조 같은 목표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패션그룹형지는 ‘존경받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으면 합니다. 대학도 못 나온 부족한 사람이 정말 좋은 기업을 만들어서 존경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기업이 될 수 있게 만들어야겠죠. 25년 전 좌우명으로 삼은 ‘일근천하 무난사(一勤天下 無難事:부지런한 사람은 세상에 어려움이 없다)’를 늘 오늘도 가슴에 되새깁니다.”
■ 최 회장이 자만할 때마다 꺼내보는 소장품은?
부도난 어음 보며 ‘초심’ 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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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은 “국외 출장 갈 때 그동안 탔던 이코노미석 말고 비즈니스석을 탄 적이 있었는데 그때 ‘15년 돼 덜덜덜 소리 나는 냉장고도 안 버리는 최병오가 너무 교만해진 게 아닌가’ 했다. 더 교만해진다 싶으면 꺼내보는 게 바로 이 서류들”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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